사건사고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정리

트러블메이킹 2021. 5. 13.

 

- 동시에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 -

 

 

 

 

 

여사장 박씨는 1987년 대전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로써 이름을 떨쳤다고 합니다. 

 

그녀가 운영하던 공예품 회사 '오대양'은 직원들 복지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한편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한 최고급 보육 시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직원 자녀를 위한 학사를 무료로 지원하는 등 당시 이른바, '꿈의 직장'으로 전해졌다 합니다.

때문에 박 사장은 인근 지역 여성들의 '워너비'이자, 대전의 천사로 칭송이 자자했을정도 했을정도로.

그런 그녀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것도 전직원 및 아이들과 함께........

 

 

 

- 공장 천장 안 32구의 시신들 -

 

 

 

 

 

 

행방불명 닷새 만에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회사 공장의 천장이었고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밝혀집니다. 

 

모두 32구의 시신은 두 곳에 나뉘어 겹겹이 쌓여있었고

이들 대부분은 속옷 차림에 손과 발이 결박되어 있는 상태였으며

목에는 뚜렷한 교살의 흔적이 남아있었다네요. 명백히 타살 흔적이었죠.

 

그런데 기이한 것은 누구에게도 저항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부검 결과 충격적이게도 어떤 약물도 검출되지 않으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사건 발생 며칠 뒤, 현장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됐다는데요.

모두 예순일곱 개로 찢긴 하얀 종이쪽지였다고 합니다. 

몇 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복원된 쪽지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는데요. 

 

'절대로 입 닫아라…'로 시작하는 의문의 쪽지는 과연 어떤 진실을 담고 있을지 궁금해 지는거죠. 

그리고 오대양 사건을 단독 보도했던 사회부 기자와 당시 현장 감식을 총지휘한 경찰 

그리고 살아남은 회사 직원들의 증언을 통해 미스터리한 그날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하는건데요.


이러한 예고편 내용만 봐도 충격적인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의 전말이 

너무 궁금해서 먼저 찾아봤습니다.

 

 

 

 

-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 정리 -

 

 

 

 

 

 

사건의 발단은 박순자가 오대양이라는 

종교단체와 기업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박순자는 1974년 횡격막에 병이 생겨 고통받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병이 회복되는 일을 겪었다고 주장했다는데요.

박순자는 신 덕분에 병이 나았다고 믿었는지 신학교를 다니다가 여호와의 증인에 입문하게 된거죠.



박순자는 구원파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이탈 및 탈주하여 

1984년 5월, 대전에서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사이비 종교 겸 회사를 직접 만들었는데 

바로 사건의 중심이 되는 '오대양'이었다고 합니다.

 

 

 

 

 

 

 

 

 

 

오대양 교단은 유치원과 양로원과 고아원 건물을 사들이거나 임대해 사회사업을 했는데요. 

겉으로는 시설을 당시로선 최신식으로 꾸며 고아들을 잘 키우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실제 속내는 신도들의 자녀를 세뇌하여 아이들에게

'부모는 없고 너희는 고아이며 박순자만이 진짜 어머니'라고 유도했다네요. 


교주 박순자는 1984년에 공예품 제조회사 '오대양'을 만든 뒤 

수입품 판매장을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대전과 용인 등의 공장을 사들이며 사업을 확장했다고 합니다.

1986년 4월, 일본의 모 전자 부품 생산업체와 합작해

당시로선 대단한 거액인 7억 원을 투자해

전자제품을 만들려고 했으나 사기였고 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손실을 매꾸기 위해 박순자는 신도들에게 '사채를 많이 끌어오라.'고 명령하게되고

신도들은 자신의 일가친척들에게도 돈을 빌려서 박순자에게 바쳤다는 거죠.

그리하여 박순자가 신도들을 굴려 끌어모은 사채는 무려 170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갚지는 않고 사채만 끌어 쓰니 당연히 채무자들에게 독촉과 사채이자가 쌓여갔다고합니다.

 

 

 

 

 

 

87년 8월 16일, 박순자에게 7억 원을 빌려준 이상배라는 사람이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려고 부인과 함께 오대양 공장을 찾았다가 신도들에게 집단 구타당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경찰에 오대양을 고소했습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들의 만행에 더 이상 참다 못한 다른 채권자들도

박순자와 오대양을 고소했고, 경찰은 사기혐의로 박순자를 조사했고, 사회에서 주목받게 된거죠.



엄청난 사채 이자를 더는 감당 못할 지경에 이르고 경찰과 언론의 압박까지 계속되자

박순자는 특별히 사채를 가장 많이 끌어모은 열성 신도와 자신의 가족을 포함해

31명과 함께 오대양 용인 공장의 식당 천장에 4일간 숨었다고 합니다.



1987년 8월 29일, 오대양 직원 김 모 씨는 경기도 용인의 공장에 왔다가 

내려앉은 숙소의 천장을 보고 이상히 여겨 식당 쪽으로 갔는데

식당 천장에서 죽어 있는 박순자를 포함한 32명을 발견하고

마침 가족을 찾으러 공장에 온 박순자의 남편에게 알렸다고 합니다.

박순자의 남편이 경찰에 오후 4시 무렵에 신고해

집단변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 사건의 전말입니다.



당시 실제 사인은 교살(목졸림)로 판명되었으므로

경찰은 사망자들이 멀미약과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명합니다.

 

 

 

 

 

가장 먼저 박순자가 공장장 이경수에게 자신을 교살하게 한 뒤에

뒤이어 이경수를 비롯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교살시키고 난 후

박순자의 두 아들들이 철골 서까래에 줄을 매고 자살했고

마지막으로 이경수가 목을 메어 자살했다고 경찰은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사건의 전모가 일부나마 드러난 것은 1991년 7월 수배 중이던

오대양 직원 중 6명이 자수하면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자수한 사람들의 진술로 사건의 열쇠를 쥔 것으로

주목받았던 오대양 총무 노순호, 기숙사 가정부 황숙자, 육아원 보모 조재선 등이

이미 사건 발생 전에 반성의 시간에서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오대양 직원들에게 무참히 살해된 뒤 암매장을 당했다고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끔찍한 사건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의 자수로 사건이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재조사되었고

검찰 수사 결과 1987년의 수사와 동일하게 32명의 집단 자살 사건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결국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교주와 신도들의 집단 

자살이라는 끔찍한 비극으로 막을 내린 사건입니다.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번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두번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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