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실미도 사건 - 지키지 못한 약속 오소리 작전 684부대의 실체

트러블메이킹 2021. 5. 19.

- 청와대로 진격한 군인들의 정체는? -

 

 

 

 

1971년 8월 23일 평화로운 일상적인 월요일 오후에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섰습니다.

버스를 세운 건 군복 입은 군인청년 무리였고 손엔 총과 수류탄을 들고 있었습니다.

버스를 탈취한 이들의 요구는 단 하나! 청와대로 가는 것이었다고 말을 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요

하지만 버스는 서울에 진입하자마자 출동한 군경의 바리케이드에 가로막혔고

곧바로 치열한 도심 총격전이 벌어지게되면서 부상당한 청년 하나가 사망 직전에 옆자리 승객에게

'쪽지 한 장'을 건내줍니다. " 전 오늘 살아나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저 대신 저의 집, 옥천으로 편지를 보내주세요"

라는 간절한 메세지를 전해주게 됩니다.

 

과연 이들에게는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진격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오소리 작전은 무엇이었는가? -

 



​버스 탈취사건이 있기 약 3년 전에 알수없는 미지의 장소로 청년 31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들의 임무는 '오소리 작전' 국가기밀 작전이었습니다.

 

오소리 작전은 바로 북한에 침투하여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한 북파공작 작전을 말하는거였습니다.

그들의 존재도 국가기밀로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 채 은밀한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면회도 외출도 불가한 편지 한 통 쓸 수 없는 고립된 그곳에서 청년들은 실탄이 날아다니는 극한 훈련을 받게 되었고

심지어 '사람 뼛가루'까지 나눠 먹으며 '인간병기'로 재탄생하는 끔찍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극한 훈련을 받으며 기다린 오소리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고 그들에게는 씻을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 684부대 실미도 사건 실체 정리 -

 


오소리 작전의 실체는 바로 실미도에서 훈련받은 684부대였습니다.

이른바 실미도 사건으로 불려지게 되는데요.

 

실미도 사건은 1971년 8월 23일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무의리(현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던 공군 북파공작 부대의 부대원들이 교관 및 감시병 18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섬을 빠져나와서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진입한 뒤 군인들과 총격전을 벌이다

684부대 실미원 대원들이 거의 대부분 수류탄으로 자폭 자살한 사건입니다.

부대원과 진압군 / 경찰의 총격 과정에서 경찰 2명과 민간인 6명이 사망하는 등 끔찍한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684 부대(1968.4-1971.8)는 실미도에 있었던 북파목적의 특수부대입니다.

이 부대는 1968년에 일어난 1·21 사태(박정희 암살을 기도한 사건)에 대한 보복을 목적으로

같은 해 4월에 총원 31명으로 창설되었습니다.

 

684부대원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 침투하여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훈련 과정 중 7명 군인청년 사망)을 거쳐 인간병기로 거듭났으나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작전 자체가 불확실해지고 흐지부지 되면서 북파임무가 취소가 되고 

가혹한 훈련과 장기간의 기다림에 지쳐있던 684부대원들에게 돌아오는건 몇년째 기약없는 기다림과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해주지 않았고 아무쓸데없는 집단으로 내팽겨쳐진 신세가 되자

불만을 품은 684부대원들은 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경 교관 및 감시병 18명을

살해하였고 이 과정에서 부대원 1명도 사망하였습니다.

 

 

 

섬을 빠져나간 23명의 684부대원들은 12시 20분경 인천 옥련동 독부리(옹암) 해안에 상륙한 뒤에 

인천에 한 시내버스를 탈취하여 청와대 방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인천에서 육군과의 총격전으로 타이어가 터져버리는 바람에 버스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이들은 수원-인천간 시외버스를 다시 탈취해서 14시 15분경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유한양행 건물 앞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서 마지막 총격전을 벌이다 부대원 거의 대부분이 스스로 수류탄을 터뜨려 목숨을 끊게되고

생존자 4명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서 1972년 3월 10일 사형이 집행되는 안타깝고 끔직한 결말로 사건은 마무리 됩니다.

 

 

 

- 684부대 사건을 각색한 실화 영화 실미도 -




684 북파부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실미도는 2003년 12월 24일날 개봉했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고 실미도 684부대가 있었다는걸 알았는데요.

 

영화와 실제와 다른점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청년 군인들이 사형수 혹은 흉악범 죄수들이라고 나왔지만

실제로는 684부대에 모인 군인청년들은 범죄자가 아닌 대부분이 가난하고 힘없는 청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조사한바로 훈련병중 범죄자는 하나도 없었다고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실미도 684 부대 멤버중 유일하게 생존했던 김방일 소대장은 이사건 이후에도 공군에서 계속 복무했으며

1990년 준위까지 진급하고 퇴역하고 이후에 유일기업의 대표로 지내다가 684부대의 명예 회복에 힘썼으며

영화 실미도도 직접 관람한것으로 전해집니다.(2005년에 사망)

 

시대가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성숙해지는만큼 이런사건은 앞으로 없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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