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서진룸 살인사건 정리

트러블메이킹 2021. 5. 18.

 

-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정리 -

 

 

서진룸살롱 살인사건은 1986년 8월 14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형 룸살롱으로 알려진 서진회관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전라도 목포출신 조직폭력배들의 사소한 시비로 인해 집단 패싸움으로 번져 살인사건으로 까지 이어진 사건인데요

 

이 일로 인해 반대파 조직원 4명이 살해당했고 이 사건의 주범 조직원 2명이 사형당하는 아주 참혹한 에피소드입니다.

전라도출신의 국회의원 및 지역유지들도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수사를 받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당시에 서로 대치되었던 조직은 서울목포파 / 맘보파 / 였습니다.

 

사건의 구성은 이렇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1986년 8월 14일 밤 10시에 목포파의 혈기왕성한 젊은조폭들이 대장 장진석과 행동대장 김동술 등등

여러명에게 사시미와 알류미늄 방망이로 상대방 조직원 맘보파를 잔인하게 무차별하게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원래 조직폭력배간의 집단 패싸움에서는 사시미나 기타흉기로 상대방을 겁준다거나 죽지않을정도까지만 행동을 하는데

이번 사건같은 경우는 정면 싸움도 아닌 기습으로 상대방을 무참히 죽여버렸습니다.

 

조폭들이 아무리 겁없고 막산다고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면 얼마나 큰죄이고 그에 대한 대가는 얼마나 무거운지

잘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상대파 조직원 4명을 끔찍하게 죽여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맙니다.

 

이렇게 살인이 시작 된 계기는 교통사고를 낸뒤 실형 선고를 받고 교도소에서 출소한 맘보파 고용수의 석방을 축하하는

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하필 그 옆방에서 상대파 조직원 목포파 8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맘보파 일행 방에서 술시중을 들던 남자 종업원의 태도가 상당히 기분나쁘다며 조직원 한명이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고

구타 당한채로 울면서 나온 종업원의 모습을 목포파가 목격하게 되고 이유를 상세히 듣게 됩니다.

 

안그래도 서방파 김태촌 방계라는 족보우월주의가 강했던 맘보파는 항상 목포파를 평소에 무시하고 깔보는데

목포파 즉 자기들 구역에 동의도 구하지 않고 술집에 들어와 술먹는것도 모잘라 평소 자기구역에서 일하는 종업원을

말도 안되는 이유로 구타까지 하자 목포파는 참을수 없는 분노에 차오르게 됩니다.

 

 

그러다가 여기서 목포파가 폭팔하는 트리거가 나오는 계기가 나오게 되는데요

목포파 김승길과 고금석이 화장실을 가게 되는데 맘보파 조원섭이랑 마주치게 됩니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지라 맘보파 조원섭이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인사를 안하게 되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조원섭이 버릇을 고쳐주겠다면서 멱살을 잡고 두사람의 뺨을 후려쳤습니다.

 

목포파는 맘보파 조원섭에게 모멸감과 무시를 제대로 당했기 때문에 걷잡을수 없는 분노로 차게되지만

 

그러나 목포파는 비록 자신들이 유도대학교를 다니고 유도를 전문적으로 했지만 상대방 맘보파의 전력에는

한참 못미쳤기에 목포파 조직원들은 주저하게 됩니다.

 

그 이유에는 맘보파 조원섭이라는 인물때문인데요.

씨름과 유도에 능통했으며 힘이 아주 장사였다고 합니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맘보파는 보잘것없는데 조원섭때문에 피한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주먹세계에서는 전라도 최고 싸움꾼으로 알려져있었습니다.

 

 

 

- 목포파의 범행 전개 -

 

 

주저하고 있던 목포파 조직원들은 서로의 계획과 작전을 거듭하고 고민한 끝에 범행을 결심하게 됩니다.

종업원을 통해서 맘보파가 자신들을 상대할 무기가 없다는것을 확인하고 술에 취해있다는 사실을 듣고

칼과 방망이 도끼 등을 꺼내들고 맘보파가 있는 방에 들어가 무자비하게 공격을 자행했습니다.

 

특히 맘보파의 핵심전력이었던 조원섭에게 공격이 집중이 되었습니다.

칼과 방망이 도끼로 인해 주먹으로 유명했던 조원섭도 무기앞에는 어쩔수 없었는지 그자리에서 즉사해버립니다.

이 기습으로 인해 맘보파 조직원 4명은 그자리에서 즉사하였으며 광복절 특사로 나온 고용수마저 교도소에서 나와

세상 자유의 공기를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그 현장에서 죽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목포파 직원들은 이미 사망한 맘보파 조직원 4명의 시신을 차에 싣고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한 정형외과 수술실 앞에

내려놓고 버려둔채 " 교통사고 환자요 " 라고 소리친뒤 도망가버렸습니다.

 

 

상대 조직원을 잔인하게 난도질한 사건으로 총 12명의 조직원들이 구속되었으며

1987년 10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지게 됩니다.

 

주범인 김동술과 고금석은 사형이 선고되고 김승길과 장진석은 무기징역을 나머지 조직원들은 가담에 따라

유기징혁이 선고되었습니다. 이때 당시 고금석과 김동술의 나이는 무려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지금 2021년 기준으로 20대초반의 얼굴이 사진과같이 나왔다는것도 충격이고 사형이 내려졌다는것도 놀랍습니다.

 

결국 김동술과 고금석은 1989년 8월 4일에 처형이 집행이 되었습니다.

김동술 사형 집행할때에 버튼을 눌렀는데도 바닥 시스템이 고장이 나서 옆에 내버려둔채 수리를 진행했는데

그 고치는 45분동안 김동술은 사형의 공포를 느꼈는지 계속 떨다가 재집행을 받고 사형되었습니다.

 

장진석은 무기징역에서 감형되어 31년 수감생활을 하고 2017년 12월 22일 특별사면되어 

순천교도에서 출소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일로 인해 유도대에서 용인대로 학교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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